편집부기사
2024년 4월 3일, 홋카이도에서 놀이시설을 운영하던 '스가이디노스'의 지주회사가 약 18억 엔의 부채를 안고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스가이디노스는 게임센터, 볼링장, 영화관 등을 운영하며 홋카이도 놀이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 . 창업에서 번영으로: 극장부터 시작하여 복합 레저 빌딩 개발
2 . 변화의 시대: 게임센터의 부상
3. 영광의 1990년대: 영화관 복합단지 설립
4. 21세기의 도전: 다각화로 가는 길
5. 종말의 서막: 사업 침체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6. 끝으로: 스가이디노스가 낳은 문화의 등 불은 여전히 켜져 있다.
창업에서 번영으로: 연극 소극장에서 출발해 복합 레저 빌딩을 개발하다
스가이디노스는 1917년 개관한 극장을 모태로 1954년 영화 흥행이 주업인 스가이흥행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쇼와 3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쳐 영화관 개설과 볼링장 경영에 종사하며 주로 홋카이도 내에서 어뮤즈먼트 사업 확대에 힘썼다. 특히 1968년 삿포로 극장을 철거하고 새롭게 개설한 '삿포로 스가이 빌딩'(이후 '디노스 삿포로 중앙 빌딩')은 영화관, 볼링장, 사우나, 당구장, 탁구장 등을 갖춘 대형 복합 레저 빌딩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변혁의 시대: 게임센터의 등장
1978년에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삿포로 스가이 빌딩의 테넌트를 게임센터로 전환. 새롭게 게임장 경영에 착수한다. 이는 당시 볼링 붐의 쇠퇴와 게임 산업의 번영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적응한 것이었다.
영광의 1990년대: 시네마 콤플렉스 개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가이 디노스는 영화관 사업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데, 1995년 삿포로 스가이 빌딩 내 영화관을 개조하여 홋카이도 최초의 7개의 스크린을 갖춘 본격적인 시네마 콤플렉스 '스가이 시네마플렉스 삿포로 극장'(이후 '디노스 시네마즈 삿포로 극장'으로 변경)을 개관했다. 이는 다양화되는 영화 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에도 스가이디노스의 영화관 사업은 1999년 시네마 콤플렉스 무로란 극장, 2003년 스가이디노스 아사히카와, 2005년 스가이디노스 도마코마이로 이어져 나갔다.
21세기의 도전: 다각화의 길
2000년대 들어 스가이디노스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2000년 주식회사 게오와 자본 및 업무 제휴를 맺고 렌탈 및 재활용 사업에 진출했으며, 2005년에는 주식회사 게오의 연결 자회사가 되었고, 2009년에는 카페 사업과 피트니스 사업도 전개하기 시작했다.
종말의 서막: 사업 부진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하지만 홋카이도의 어뮤즈먼트 사업을 비롯해 다각화했던 사업들이 부진에 빠지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겹치면서 2018년 스가이디노스의 상징이었던 '디노스 삿포로 중앙 빌딩'을 매각했다. 폐점을 아쉬워하는 많은 팬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2022년 5월, 스가이디노스는 민사 회생 절차를 시작했다.
끝으로: 스가이디노스가 낳은 문화의 등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스가이디노스가 만들어낸 문화의 등불은 지금도 남아 있다. 디노스 시네마즈 삿포로 극장으로서의 유전자는 타누키코지 5초메에서 영화 상영을 계속하고 있는 '사츠게키'('사츠게키'는 디노스 시네마즈 삿포로 극장의 오래된 애칭)에 계승되고 있다. 또한, 어뮤즈먼트 사업과 볼링 사업은 전국에 약 190개의 게임센터를 운영하는 'GiGO'의 주식회사 GENDA GiGO Entertainment에 사업 양도가 이루어졌으며, 디노스의 간판은 GiGO로 순차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100년 이상 업계를 이끌어온 스가이디노스의 역사는 홋카이도 오락산업 발전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